중국이 지난 9월 3일 개최한 전승절 80주년 기념 행사는 단순한 역사 추모가 아니었다. 첨단 무기와 병력이 대거 등장한 열병식은 ‘항일 전쟁 승리’라는 과거를 기리는 동시에, 오늘날 중국의 군사굴기와 군사력 과시를 전 세계에 알리는 장이었다.

나는 2007년 초, E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대국굴기〉를 통해 처음으로 중국의 국가 전략을 생생히 접했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2006년 11월 중국 CCTV에서 방송된 12부작 다큐멘터리였다. 여기서 '굴기(崛起)'란 문자 그대로 ‘우뚝 일어선다’라는 뜻으로, 한 나라가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오르는 과정을 의미한다.

당시 화면 속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경제적 부상’을 국가적 사명처럼 밀어붙이고 있었다. 제조업과 수출, 도시화와 기반 시설 확충은 단순한 성장 전략이 아니라 '굴기'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였다. 그 다큐멘터리는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중국은 이미 치밀하게 준비했고, 결국 그것을 이루어냈다. 국력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계산된 준비와 집행의 결과였다.

어제 열린 전승절 기념 행사는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이번 전승절은 단순히 항일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첨단 무기와 장병들의 행렬은 ‘역사를 기린다’기보다 ‘군사굴기를 과시한다’라는 성격이 더 짙어 보였다. 항일 전쟁에서의 승리가 오늘날 강력한 국방력으로 이어졌음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듯했다.

중국은 경제굴기를 통해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고, 이제는 군사굴기를 통해 강대국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 역시 우연이 아니다. 경제에서 축적한 힘을 토대로 군사적 굴기를 준비해 온 긴 과정의 결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주변국에 심각한 함의를 던진다. 대만 해협과 남 중국 해에서 높아지는 긴장, 미국과의 패권 경쟁,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단순히 중국 내부의 자부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승절은 역사적 회고와 함께 국제사회를 향한 전략적 메시지가 겹쳐 있는 행사였다.

우리에게도 과제는 뚜렷하다. 경제굴기가 군사굴기로 이어진 중국의 부상은 한국의 외교·안보·경제 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대중 경제 의존도를 줄이는 다변화 전략, 안보 공백을 최소화할 대비, 미국·일본과의 협력과 동시에 중국과의 전략적 대화 병행이 필요하다. 80년 전 항일 전쟁의 승리는 과거의 역사지만, 중국 전승절 80주년은 미래를 예고하는 신호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역사가 오늘 어떤 의미로 재 해석되고 있는지 냉철하게 읽어내는 일이다.

〈대국굴기〉에서 본 경제적 부상이 이제는 군사굴기로 이어졌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이번 전승절이 던지는 진짜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