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풍요의 계절을 상징하는 속담이지만, 올해 추석의 풍경은 예전과 달리 소박함을 향하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 속에 서민 가계가 위축되면서 명절 차례상은 점점 간소해지고 선물세트도 실속형이 대세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통계청과 주요 유통업체 자료에 따르면, 올해 추석 차례상 차림 비용은 4인 가족 기준 평균 35만~40만 원으로 불과 5년 전보다 약 20% 이상 증가했다. 과일값 상승과 축산물 가격 부담이 직접적 원인이다. 실제로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한우 세트는 20만 원대 중반부터 시작되며 사과, 배 등 과일세트도 10만 원을 넘어섰다. 반면 온라인몰과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5만~10만 원대 생활용품과 간편식 세트 판매량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였다.‘보여주기식’보다‘실속형’ 소비가 대세가 된 것이다.
명절 음식 준비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치며 정을 나눴지만 최근에는 가정간편식(HMR)이나 밀키트로 대체하는 가정이 늘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명절을 앞두고 차례상용 밀키트 매출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늘었다”며“편리성과 합리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소비자의 성향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사회 구조 변화도 핵가족과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추석 문화를 바꾸고 있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는 이미 33%를 넘어섰다. 자연히‘민족 대이동’이라 불리던 귀성 행렬도 과거에 비해 한결 줄었고, 고속도로 정체 대신‘명절에도 집에 머무른다’는 응답이 늘어난 것이 최근 몇 년의 변화된 모습이다. 영상통화와 모바일 메시지로 안부를 전하는‘비대면 명절’이 보편화된 것도 특징이다.
이처럼 추석의 풍경이 달라지는 것은 단순한 경기 불황 탓만은 아니다. 경제학자들은“소득 대비 물가 상승으로 실질 구매력이 줄어든 데다, 사회적 관계망이 축소된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다시 말해, 풍요로움을 보여주던 차례상은 더 이상‘경제력의 상징’이 아니며,‘합리적 소비’와‘소박한 정성’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적 측면에서 본다면 이는 전통의 퇴색이 아니라 변주다.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생전에“전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옷을 갈아입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의 추석이 바로 그 사례다. 송편 대신 편의점 선물세트를, 귀성 대신 영상통화를 택하는 풍경은 달라졌지만, 본질적으로는‘마음을 전한다’는 명절의 의미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풍요에서 소박함으로’의 이동은 위기이자 기회다. 단기적으로는 소비 위축과 내수 부진을 보여주는 지표지만, 장기적으로는 허례허식을 줄이고 실속 있는 문화를 정착시킬 가능성도 있다. 이에 무엇이 진정한 풍요인가? 라는 질문이 우리 앞에 남는다. 값비싼 음식과 화려한 선물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대화와 따뜻한 마음이 그 해답일지 모른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추석은 여전히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다. 달라진 풍경은 시대가 만든 불가피한 변화이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가장 한국적인‘정(情)’이라는 보이지 않는 자산이다.
올해도 차례상이 다소 비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정성이고 따뜻한 마음이며 함께하는 대화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한가위의 진정한 맛이 아닐까. 팔월 한가위, 마음만큼은 넉넉해지길 소망한다

ybc뉴스 제주본부장 장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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