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투표소 현장에서 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행정 사고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후폭풍은 폭발적이다
여당은 “예상 밖 높은 투표율 탓”이라며 축소하고, 야당은 “부정선거” “조작 의혹”을 꺼내 든다.
문제의 본질은 선거 관리 실패인데, 어느 순간부터 논쟁의 초점은 “누가 이득을 봤느냐”로 옮겨간다.
한 장의 종이, 한 표의 신뢰 기표소 안에서 유권자가 손에 쥐는 것은 종이 한 장이지만, 거기에 실린 것은 정권의 정당성이다.
그 종이가 모자란다는 말 한마디가 나오면, 유권자의 머릿속에는 순식간에 물음표가 켜진다.
“왜 준비가 안 돼 있지?” “혹시 누군가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건 아닐까?”
실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와 무관하게, 불신은 이미 발생한다.
그 불신이 쌓이면 투표함이 아니라 민주주의 전체가 의심받는다.
숫자와 매뉴얼의 실패, 그리고 정치의 유혹 으로 변한다.
투표용지 부족은 원칙적으로는 숫자의 실패다.
선거인 수, 예상 투표율, 예비분 비율을 보수적으로 잡았다면, 웬만한 변수는 감당할 수 있다.
여기에 인근 투표소와 긴급 분배, 인쇄소 추가 발주, 유권자 안내 절차까지 갖춰졌다면 “일시적인 혼선”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준비는 부족했고, 현장 대응은 들쭉날쭉했다.
그 틈으로 정치가 들어왔다. 집권 세력에게는 유혹이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최소화하고, 문제 제기 세력을 “선동”으로 몰고 가고 싶은 충동이다.
야당에게도 유혹은 있다.
모든 혼선을 ‘정권 책임’으로 묶어 최대한 큰 정치적 청구서를 내고 싶은 욕심이다.
결과적으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행정 시스템을 고치는 계기가 아니라
당리당략을 위한 프레임 전쟁의 재료로 소모되고 만다.
“누가 이득 봤나”가 아니라 “다시는 안 겪으려면”기자 입장에서 가장 답답한 지점은 여기다.
사건이 불거진 뒤 여야가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정치적 책임’이다.
그러나 정작 유권자가 듣고 싶은 건 다른 질문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고, 다음 선거에선 어떻게 막을 건가.”
투표용지 예비분 산정 기준은 적정했는지, 현장 매뉴얼은 실제로 교육·훈련됐는지,
비상 상황에서 투표를 포기한 유권자는 얼마나 됐는지,그에 대한 보완책과 사후 공개 계획은 무엇인지.
이 질문에 정권이 먼저 답해야 한다.
야당 역시 ‘부정선거’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던지기 전에 숫자와 절차, 제도 개선 방향을 놓고 정부를 압박하는 편이
더 책임 있는 정치다.
정권이 진짜 얻어야 할 이득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당리당략에 이용하는 정권은
단기적으로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다음 선거, 그다음 선거까지 자신이 치르는 모든 선거의 신뢰도를 스스로 깎아먹게 된다.
정권이 진짜 얻어야 할 이득은 야당을 향한 일시적 우위가 아니라,
“이 정부 아래에서 치러지는 선거는 믿을 만하다”는 유권자의 확신이다. 투표용지 한 장의 부족이
정권의 정치적 무기가 되는 순간,
그 정권도 언젠가 똑같은 의심의 표적이 된다. 선거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유권자의 것이다.
이 상식을 먼저 떠올리는 쪽이, 비로소 민주주의를 다루는 ‘정권’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이준수 기자 ybcnews@ybcnews.co.kr 이준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편집 : 2026.06.10 (수) 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