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피해 자산을 은닉하는데 이용하는 해외의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한국인이 대략 245명이나 된다고 발표되면서 한국사회를 온통 발칵 뒤집어놓고 있다. 한국의 비영리 독립 언론인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기업명단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2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공개된 명단에는 우리나라 재벌 총수와 임원 등 거물급 인사 12명이 포함돼 있어 충격이 컸고, 앞으로도 추가 공개가 예정돼 있어 산업계는 물론 정치적,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조세피난처(Tax haven)라는 용어는 회사 소득의 전부가 일정 부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국가나 지역, 세제상 우대와 함께 금융거래에 따른 비밀이 철저히 보장되며 국가 간에 이뤄지는 조세경보교류에도 매우 소극적이다. 따라서 기업이나 부유층 재산을 은닉시키거나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역대 제 3세계 독재자들이 통치자금이나 퇴임 후 도피자금을 관리하기 위한 장소로 활용해온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번에 발표된 기업들은 조세피난처에 이른바 서류상으로만 회사인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들은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외국회사와 합작 사업을 하면서 기업설립과 청산 절차가 간편한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특히 해운회사는 배를 임대하는 용선 계약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대기업 전문 사이트인 재벌닷컴에 따르면, 공기업을 재외한 자산 1조원 이상 국내 민간기업 가운데 24곳이 케이맨제도와 버진아일랜드, 파나마 등 9개 지역에 해외법인을 두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모두 125개의 회사를 두고 있고 자산총액만도 무려 5조 7000억 원에 달했는데 대다수가 2003년 이후에 설립됐다. 지난해 말 현재 자산이 전혀 없거나 매물실적이 없는 법인은 전체의 57%인 71개에 달했다. 대부분 적법절차를 거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금융거래와 자산 내역을 신고한 후 세금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는 기업과 부유층이 재산을 빼돌리거나 비자금을 만들고 세금을 회피하는 수단의 하나로 악용되기도 한다. 이번 국제 탐사보도 언론인협회의 명단 공개로 프랑스·러시아·필리핀에서는 유력 정치인과 그 가족이 재산을 숨긴 사실이 드러나 공직을 떠나기도 했다.

이번에 명단을 공개한 뉴스타파의 최승호 기자는 “이번 공개는 신탁회사(페이퍼 컴퍼니 설립 대행사) 두 개의 내부고객정보데이터를 입수해 분석한 것이므로 245명의 명단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작년 여름 영국의 조세정의 네트워크(tax justice network)는 1970년 이래 한국의 국외 은닉자산 규모가 약 880조원으로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 3위에 이른다고 발표했는데 이 액수는 올해 우리나라 전체국가예산보다도 두 배 이상 되는 천문학적인 규모이다. 탈세는 세금만큼이나 인간사회의 오래된 사회문제라고 치더라도 이건 너무 지나치다. 나라를 거덜 내고도 남을 국부유출인 것이다.

지난 1997년 전 국민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던 외환위기의 원인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분석이 일리가 있는 말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으로 숨겨진 세원확보에 전력을 추구하는 만큼 사회악인 해외은닉자산을 찾아내는 해법부터 모색해야 할 때다. 불투명한 경영과 기업의 이기주의. 부패와 탈세, 양극화와 경제 불균형의 원인인 세금회피를 먼저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경제민주화도 창조경영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김철수 논설위원(아동문학가 ·美솔로몬대학교 예술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