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한 주간 태평양건너 미국 땅 장미와 천사의 도시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로스엔젤레스에서 보냈다. 해마다 정례적으로 미주 한인교회와 한인단체를 순회하면서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교민 및 교포들과 격의 없이 만나 고국소식을 전하고 이민사회의 이슈와 이야기들을 전해 듣는 행복한 프로그램을 25년째 해오고 있다.

지난 14일 인천공항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는 비행기는 항공료 절약을 위해 대만국적의 에버그린 에어라인 항공편을 이용했다. 그런데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지 약 2시간 30분 만에 타이뻬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이 비행기는 무려 5시간이나 체류하는 바람에 다시 비행기에 올라 로스엔젤레스 국제공항까지 가는데 무려 12시간 30분이나 걸려 기다리는 시간까지 총 20시간이나 걸려야 했다.

도착한 첫날은 한인 타운의 중심거리인 웨스턴 8가에 위치한 가든 스위트 호텔에 여장을 풀었지만, 다음날은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솔로몬대학교 제13회 졸업식 및 학위수여식에 참석하고, 다음날 일요일이 되어 한인교회인 미주베델장로교회에 가서 교포들을 위한 낯 설교를 하게 되었다. 마침 이 날은 전 미국에서 ‘아버지의 날’(Father’s Day)로 지키는 주일이었다.

한국에는 5월 8일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념하는 날로 ‘어버이 날’이라 부르지만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을 별도로 구분해서 국가가 정하는 기념일로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본래는 6월 19일인데 실제로는 6월 세 번째 주일에 지키고 있다.

첫 아버지의 날은 미국 워싱톤 주 스포케인에 살던 소모라 스마트 도브(Somora Smart Dodd) 여사에 의해 제청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어머니날이 처음 시작된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서 어머니날이 공식적으로 지켜진 지 2년 후인 1910년 5월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 설교를 듣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홀로 자신을 비롯한 6남매를 키우며 고생하신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녀는 곧 아버지의 날도 제정할 것을 제안했고, 이 안은 그 도시의 목회자와 스포케인 YMCA 회원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기념일은 Dodd여사의 아버지 생일인 6월5일로 정하기로 했으나 시일이 너무 촉박하다는 이유로 2주일 뒤인 19일이 되었던 것이다. 이 날은 곧 전국적으로 아버지날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었으나 어머니날 처럼 빨리 의회에서 통과되지를 못했는데, 이는 모두가 남성으로만 되어있던 당시 미국 의회에서 의원들이 자칫 잘못하면 아버지날 제정이 자화자찬 하려는 의도로 비춰질까봐 꺼려했던 탓이다. 마침내 제안된 지 62년이 지난 1972년 닉슨대통령에 의해 아버지날은 공식적으로 제정이 되었으니 올해로 41회가 되는 셈이다.

어머니날의 꽃은 카네이션인데 아버지날의 꽃은 장미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붉은 장미를 가슴에 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흰 장미를 가슴에 달게 되는 것이다. 예배가 끝나고 교우들이 삥 둘러앉아 축하케일을 잘라 나눠먹으면서 일 년 중 단 하루만이라도 아버지를 생각하는 자식들이 달려와 사랑과 축하의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나라의 아버지들이 더욱 축은하고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자식들을 조기유학 보내고 아내까지 딸려 보낸 ‘기러기 아빠’들의 실상은 비참할 정도이다. 어떤 아빠는 월 500여 만원의 월급을 받는 중견기업 임원인데 매달 유학 간 아이들과 아내의 생활비로 4천불 정도 보내고 나면 점심 한 끼 제대로 사 먹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빈 털털이가 되어 겨우 라면으로 아침과 저녁식사를 때우는 것이 일상사라는 충격적 보고가 언론에 소개된 바도 있다.

고개 숙인 아버지, 평생토록 자식들의 뒷바라지에 허리가 굽고 진액이 빠져 초라한 몰골이 되어도 어느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외로운 신세가 되고 단지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면 용도폐기처분 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제대로 가장으로서 권위를 회복하고 사기가 충천할 때 우리의 가정이 건강하고 국가와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김철수 논설위원(아동문학가 ·美솔로몬대학교 한국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