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한 주간 재중동포들의 집거지인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인 연길 시와 국경도시 도문, 그리고 그 옛날 독립군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던 용정시를 다녀왔다. 이번 중국방문은 한·중수교이전인 지난 1991년 이후 57번째 방문이었지만 늘 설레는 마음과 함께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집을 떠나 한 주간을 보내고 왔다.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잃은 우리 선조들은 두만강을 건너 혹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의 서간도나 북간도에 망명을 한 후 오로지 나라를 되찾기 위한 피눈물 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중국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던 우리 동포들은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오로지 나라의 독립만을 생각하며 하나로 뭉쳐 살았던 독립투사들이었고 혁명 열사들이었다.

그러한 결과로 1945년 급기야 광복절을 맞았고 그 후 부터는 민족주의자들은 우리민족의 집거지에 교육기관을 세우고 민족후대를 양성하기위한 교육에 전력을 투구하여 일명 교육투사로 자연스럽게 변모했다. 그 가운데서도 중국속의 우리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데 일생을 헌신해 온 투사가 있으니 바로 용정의 김재권 선생이다. 그는 자기 스스로를 조상이 묻혀있는 고향 뒷산의 보잘것 없는 ‘등 굽은 가시나무’라고 부른다.

곧게 자라고 값어치가 있는 나무들은 모두 누군가에 의해 배어져 다른 곳으로 팔려나가기 때문에 하나 둘 모두 정든 고향과 조상들만 남겨두고 떠나가지만 자신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볼품없는 구부러진 가시나무이기 때문에 그나마 고향을 지키고 민족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민족에게 어느 누구라도 불이익을 주거나 함부로 대할 때에는 날카로운 가시를 추켜세우고 목숨을 건채 우리민족과 고향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오고 있다.

그는 ‘언제나 수수한 할미꽃처럼 세상을 살리라’는 좌우명으로 지금까지 험한 인생길 75년을 살아 온 우리민족의 보배이자 마지막 문화투사인 김재권 선생이 바로 주인공이다. 그는 1938년 10월 25일 중국 길림성 용정시 팔도진 쌍봉촌에서 평범한 농민가정에서 태어나 정규교육이라고는 초등학교 밖에 못나왔지만 평생을 신문과 잡지를 끼고 살면서 독학으로 연변대학교 조선어문학과 문화 예술반을 졸업하고 팔도인민공사 문화소장과 연길현 문련주석, 연변민간문예가협회 부주석과 명예주석, 용정 한글독서사 회장 등을 거친 의지와 집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가 오랜 세월동안 불치의 병마와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김재권 선생의 자택을 찾은 지난 12일 오후 3시, 벌써 수개월 전부터 의식이 희미해 사람도 잘 알아보지 못한다는 가족의 이야기와는 달리 한 눈에 필자를 알아보고 손을 꼬옥 잡으며 눈물이 주루륵 흘러 내렸다. 75회째 생일인 오는 25일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는 가족들의 말에 필자도 말문이 막혀 그저 말없이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북간도의 매서운 칼바람에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촛불마냥 이 시대 마지막 우리민족의 문화투사 김재권 선생의 운명 앞에 서 있는 필자의 마음은 한없는 안타까움으로 가득 찼다.

김재권 선생의 부친은 일제강점기시절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일본헌병대의 군견에 물려 장렬하게 순국한 독립투사이며 어린시절부터 홀 엄니를 모시고 살아야했던 소년가장이기도 했다. 특히 중국에 단 하나밖에 없는 한글도서관을 세워 우리민족 후대들에게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해 동분서주해왔고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여사유적지를 발굴하고 복원하는데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용정의 성결교회당 복원, 윤동주 생가복원, 명동교회 복원, 비암산의 선구자 탑, 용정중학교의 윤동주기념관, 서전서숙의 옛터 복원사업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툭히 지난 1982년 8월 15일에는 일제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날을 영원토록 기리기 위해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동성촌에 약 200여 명의 노인들을 한 자리에 모셔놓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맛있는 음식과 노래와 춤으로 잔치를 열어 광복절을 기념하도록 함으로 3년 후인 1985년 8월 15일부터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인민정부로부터 정식 공휴일로 지정해 노인절로 지킬 수 있도록 한 역사적인 주인공이 바로 김재권 선생이다.

그래서 연변의 노인절은 바로 한국의 광복절로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그런데 그가 지금 폐암말기로 의식조차 가물거리며 병마와 사투를 벌여온 지 이미 오래이며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호랑이 띠인 그를 주변사람들은 백두산 호랑이를 닮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지만 한편으로는 인정 많고 눈물이 많은 정겨운 분으로 그를 존경하며 따르고 따르는 재중동포들은 한결 같이 쾌유만을 빌고 있다.

/김철수논설위원<아동문학가·美솔로몬대학교 한국학장>